밤차를 타고 부산에 가서 새벽 바다를 본 뒤 부산국제영화제의 첫 회차 영화를 봐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술이 덜 깬 머리를 목 위에 잘 받쳐 들고 되는 대로 짐을 꾸려서 집을 나섰다. 여행을 시작한다는 데에서 오는 묘한 두근거림이 취기를 조금씩 삼켰다. 밤이었다. 터미널로 오는 지하철에서 잔뜩 취한 어린 여자아이에게 어깨를 빌려 주고, 호밀밭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그녀가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흔들리며 걷는 뒷모습에 걱정스런 시선을 집요하게 따라붙였다. 붉게 상기된 것인지 원래 붉은 얼굴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한 금발머리 외국 여자 한 명에게 던전 같은 고속터미널 역의 입구 번호를 알려 주었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얼굴에서 차마 감추지 못하는 조용한 젊은이들과, 술에 거나하게 취해 두려움 없이 소란을 피우는 아저씨들이 섞여 자아내는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잠을 청했다. 버스는 까만 밤을 은하철도처럼 빠르게 달려서 잠결에 가로등 빛이 별무리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따금 마음이 선득해졌다.

다섯시 반에 부산에 도착하자 말라붙은 양서류처럼 어서 바다 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뜨는 바다를 꼭 보고 싶었다. 그 시간에 그 곳에 당도하면 어떤 계시의 순간을 만나도록 약속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해변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해수면 위에 올라와 있었고 바다는 고요하게 대교 아래에 놓여 있었다. 일출의 빛이 스치는 지점의 해수면이 조각조각 부서지며 빛났다. 바닷가 주변에 들어선, 혹은 들어서고 있는 고층 아파트들, 목적 없이 해변을 걷고 있는 몇 명의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 사장에 밀려온 해초를 골라내어 무언가를 검은 봉투에 담고 있는 할머니들, 만면에 설렘을 띄우고 해변 근처를 서성이며 사진을 연신 찍는 외국인을 보았다. 평화롭고 아름다웠지만, 그러한 광경을 목격할 때 느끼곤 하는 즐거움과 새벽 내 묵혀 둔 취기가 아침 바닷바람에 쓸려 슬슬 가시는 상쾌함 외에는 별다른 감회가 치밀지 않았다. 눈물이 차오르거나 가슴이 뛰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 시간에 거기에서 바다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스물여덟의 광안리.

타국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맞이했던 스물두 살의 생일날이 떠올랐다. 짙은 푸른색의 호숫물이 담긴 거대한 대지의 대야 가장자리가 신의 손가락이 스친 것처럼 눈부시게 빛났던 광경을 기억하고 있다. 다른 기억들이 그렇듯이, 그 기억 역시 실재와 꿈, 2D와 3D와 4DX 체험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영원히 흔들리는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성스러운 풍경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지점에 서 있다고, 삶의 특정한 경계 위에 존재한다고 느꼈지만 사실 생일이라는 개인적인 시점을 배경으로 멋대로 덧씌운 감상에 지나지 않았다.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체험 같은 것은 없었다. 그 일들은 그저 거기 일어났다. 지형에 발생한 바다나 호수와 같이 내 앞에 발생했다. 그를 지나쳐 어딘가로 걸어가는 일들이 화살표를 만들었다. 거대한 그림은 흔하고 따분했으며, 나름의 규칙성이 있는 점묘화였다. 개미의 삶.

바다를 지나쳐, 반은 졸면서 영화제 영화 두 편을 본 뒤, 영화제 프로그램 중 하나인 T감독의 야외 토크를 기다렸다. 스케쥴을 체크하고 온 것도 아닌데 갑자기 확정된 일정인지 곳곳에서 홍보를 하고 있었다. 영화제를 다니면서 유명 감독이나 배우를 우연히 본 적도, 일부러 보려고 애쓴 적도 없어서 굉장히 특별한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만나러 태평양을 건너와 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행사 시작 두 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 지인이 빌려 준 미국 단편집의 단편 하나를 읽고, 전자책 단말기를 꺼내 스릴러 소설을 읽었다. 영화를 공부하는 듯한 부산 대학생 여자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앉아 음정의 고저차가 중국어만큼 명확한 다소 소란스러운 부산말로 이런저런 영화 잡담을 하는 것을 들었다. 영화에 대한 그들의 감상은 나와 비슷한 부분도 있었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단말기 위의 알파벳들을 훑으며, 연신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어렴풋하게 군중의 동요가 느껴지면 그 방향을 무심코 쳐다보기도 했다. 혹시 T가 온 건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러면서도 생각하면 할수록 무엇 때문에 내가 T를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가 만든 영화들을 떠올려 보았다. 어느 것도 내 인생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늘 인생에 받은 좋은 선물로 간주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오늘 우연히 그의 프로그램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내가 T를 이렇게 보고 싶어했을까. 부산에 올 생각이 아니었다면 내가 광안리의 바다를 그렇게 보고 싶어했을까. 그는 또 하필 왜 갑자기 오늘, 여기에 올 생각이 들었을까. 그도 무엇인가의 계기를 통해 불현듯 타국의 팬들이 보고 싶어졌을까. 그래서 그도 지금 작은 설렘을 안고 내게 오고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T와 나의 만남은 바다와 내가 만나는 일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목숨을 걸 만한 사랑은 아닌 연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마음을 휘저어 설레이게 하고, 곧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작은 기쁨을 느꼈다. 인생의 노선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생에 탄 물질들을 혈관의 피처럼, 마땅히 있을 곳 구석구석으로 펌프질하여 달리게끔 하는 만남 같은 거였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 하찮은 심장의 근원이었다.

부산에서 나는 T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가 내 앞에 당도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커다란 변화에 대한 기대는 없이, 그러나 그 기다림에 부수되는 모든 소모와 지루함을 기꺼운 마음으로 수용하며, 매 순간을 파도처럼 잘게 조각내어 빛을 불어넣고 있었다. 달리거나, 걷거나, 이따금 같은 자리를 서성이거나, 쓰레기를 줍거나, 사진을 찍으며 해변을 지나가는 여행객처럼. 서로를 삶의 아주 작은 일부로서 가지기 위한 욕심과 사랑만으로 우리는 그 일순의 풍경을 고대하고 있다. 그렇게 당신은 나를, 그리고 나는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다.

2013. 10. 12 해운대에서




Posted by 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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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 아이디 까먹은 줄 알았네. 

주말 밤 멍하니 남의 가게 고양이 한 마리와 일행과 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김동률의 노래가 들려왔다. 마주 앉은 이가 갑자기 김동률의 구여친들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저런 노래를 들을까, 하고 말했다. 글쎄. 좋지 않을까? 무형의 기억이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형태로 영구히 고정된다는 것은. 그리고 그 형태와 우연히 마주한 익명의 타인이 나를 알지 못하면서도 내가 가진 기억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나라면, 아주 늙은 후에도 우연히 그 노래를 만나게 되면 꽤 즐거운 기분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건축학개론>은, 애초에 내가 그렇게 좋아할 만한 영화도 아니지만 대사 몇 개가 좀 별로라고 생각한다. 특히 '꺼져줄래' 와 '니가 내 첫사랑이니까'를 참을 수 없다. 영화에 이입하려던 중에도 이 대사가 터져나오면 갑자기 현자 타임이 옴. 그래도 왜 넣었는지는 알 것 같다. 전자는 넣어야 할 것 같아서라기보다는 넣고 싶어서, 후자는 별로 넣고 싶진 않았지만 넣어야 할 것 같아서 넣은 게 아닐까. 하지만

첫사랑이라니. 사랑이라니. 선영아. 와하.

서연은 얄팍하고 예쁘지만 야심에 비해 요령이 없는 여자애고, 승민은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기엔 너무 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하는 일이 없어도 얼마든지 누군가의 첫사랑은 될 수 있군. 단지 손을 뻗어 자신의 첫사랑을 잡을 수 없을 뿐이겠지.

<웜 바디스>는 원작보다는 썰렁했다. R의 귀여움은 모두 톰 포드의 남자 니콜라스 홀트의 아름다움으로 변신당하고 말았다. 뱀파이어 에드워드와 당당히 싸울 기세인 R을 보고 나는 조금 실망했다. 잘생긴 좀비라니, 이런 더러운 루키즘. 존 레논과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가 나오지 않아서 우린 또 조금 실망했다. 저작권료가 비쌌나 보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원작에서, 나는 R이 줄리의 집 천장을 보며 존 레논의 가사를 힘들여 읽는 장면을 좋아한다. 그건 마치 어릴 적 내 방 천장에도 붙어 있었던 야광 별들이 R의 얼굴로 떨어지는 것 같은 광경이다.

반짝이는 말들이 지상의 좀비에게 내려온다.
야, 이런 게 사랑이지.

<장고: 분노의 추격자>는 훌륭한 영화다. 별로 잔인하지도 않다. 그 장면에서 정말 잘라버렸으면 좀 잔인하다고 느꼈을 지도 몰라. 근데 안 자르잖아. 주어는 숨긴다.

특히 크리스토프 발츠가 연기하는 닥터 슐츠는 정말 사랑스럽고 멋지다. 그는 영화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유일한 외부인이다. 그리고 그 이상한 나라에서 자신의 신념을 배신하는 일 없이 최대한의 이득을 취하고자 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결말을 결정했을 때. 그 순간을 본다면, 도저히 사랑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덤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반짝반짝한 악당이고 제이미 폭스는 매우 우월하게 생겼다. 패자의 운명을 타고 난 프로포션.

이 영화의 흠은 타란티노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참사를 막기 위해 감독은 자기 영화에 출연할 수 없다는 법이라도 제정해야 할 것 같다. 인간적으로 용서가 되지 않는다.

내 이름 안에도 묵음을 갖고 싶다.

Posted by 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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