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격하게 픽션이 쓰고 싶었다. 공부하느라 바쁜 와중에 수많은 문장들이 떠올랐다가 썰물처럼 사라졌다. 뭐 언제나처럼-_- 그다지 대단한 것들도 아니었지만, 순간이나마 나를 즐겁게 해 주었던 상상들을 잃는 것은 역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뭐 열심히 살고 있으니 이것도 좋은 거겠지.
아무튼 요즘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크게 두 개였는데
1. 바보 아빠와 사춘기(?) 소년의 (아마도)훈훈한 이야기. 사실은 모 유명 한국 단편소설의 패러디.
2. 똑똑하고 불운한 아가씨와 똘끼넘치는 암살자의 여러가지 의미로 갈 데까지 가는 연애질.
....으로, 2번의 경우 처음에는 아라로스 웹축제에 투고하려고 구상했던 거였다. 근데 대충 다 머릿 속으로 완성해 놓고 웹축제 가이드라인을 읽어보니(좀 미리 읽어라....) 설정이 에러. 현대 미국 마피아를 배경으로 하긴 했는데, 그놈의 '부모와의 내기' 설정을 도무지 넣을 구석이 읍따. 사실 이건 내 빈곤한 상상력의 문제인데 현대 마피아를 데리고 그런 귀여운 이야기,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내 마피아 베이스는 배신, 집착, 음모, 죽음, 피, 피, 피...뭐 이런 거란 말이야;;;; 그리고 너무 우울한 이야기라 뭔가 이벤트 취지에서 완전 어긋난 거 같아...이건 원래가 팬질용이라 오리지널로 바꿀 수도 없고, 무리하게 올린다 해도 즐겁게 읽어 줄 사람-_-은 아무도 없을 것 같으므로, 걍 머릿속에 넣어 두고 쓸만한 먹거리로 발효되는지 걍 썩어서 사라지는지 관조해 보기로 했다.
음....그리고 1번은 쓸 수 있으면 써보고 싶음. 저래뵈도 장르물이고. 근데 언제?;
원래 혼자 써놓고 킥킥대다가 잊어버리고(.....초찌질) 공개로 올리는 팬질은 거의 없는 인간이라 이 블로그에 남아있는 팬픽도 병아리 눈곱만큼밖에 없지만, 그래도 다 써서 올리기 직전까지 간 찰나에 난데없이 솟구쳐 안면 두께를 강타하는 쪽팔림의 폭풍으로 고이 가슴에 삼천원으로 남겨둔 팬픽이 몇 개 있다. 심심하니까 그거나 잠시 회상해보겠다.
1. 페이트 렌바제 팬픽. 언제나처럼 원작 설정에 충실. 할로우 엔딩 직후, 하늘의 계단을 달려내려온 바제트가 마주친 랜서-그 둘의 짧은 대화와 그 이후의 꿈, 현실로 돌아온 바제트의 이야기. 카렌 찬조출연(.....). 굳이 비유하자면 바제트가 주인공인 페이트 본편 페이트 루트 엔딩쯤 될까. 브리튼에 아발론이 있다면 아일랜드에는 티르 나 노그가 있드아! 뭐 이런 켈틱 빠심-_-?으로 시작한 팬픽이었다. 신의 아들과 오래 전 신에게 선택받은 소녀. 그의 창과 그녀의 검이 서로를 그리는 이야기. 안 올린 이유는 내가 봐도 인간적으로 너무 재미 없어서=_=
2. 페이트 케이x세이밥 남매 팬픽. 아서왕 전설에서는 왠지 삼국지의 장비나 여포쯤 되는 바보마초 취급을 받는 케이 오라방이 갑자기 거부할 수 없는 츤데레 남자의 향기를 풍기며 할로우에 출연한 이후(쾅쾅),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써나간 팬픽. 비록 할로우엔 오마케 설정샷에도 안 등장하는 사람이지만 내 상상력으로 외모따윈 커버하겠써! 슬픈 소년왕에게, 멀린과는 다른 의미로 힘이 되어주었던 소중한 한 사람. 결국은 지킬 수 없었던 남매의 약속에 얽힌 짤막한 이야기. 역시 재미 없어서 안 올렸음.
3. 아마도 페이트 길가x세이밥? 페이트 관련 팬픽이 많았던 건 이 게임이 그 자체의 질과는 상관없이 너무 사정없이 풍부한 팬질거리 망상을 제공했던 게임이어서. 아무튼, 이 팬픽의 기반은 길가메쉬x엔키두-_-로, 페이트 팬픽이라기보단 길가메쉬 서사시 팬픽이라 부르는 게 차라리 더 어울리겠삼;;; 아득한 시간 전, 지 잘난 맛에 막살던 영웅왕 앞을 막아섰던 단 한 남자와 그를 잃은 후 왕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의
연인친구를 떠올리게 했던 한 금발머리 소녀에 대한 왕님의 집착....뭐 이런 것이 그와 코토미네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배덕의 공기로 가득 찬 어두운 교회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욕망의 집결체인 듯한 한 왕과 인간의 욕망 따위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알 수 없었던 한 신부의 자조적인 대화. 안 올린 이유는 역시 재미가 없.....
4. 페이트&스타워즈 크로스 팬픽. 자매품으로 하우스와도 크로스했는데 그 망상은 포스팅했었다. 근데 스타워즈 쪽은 너무 진성 시리어스라서...긍께 뭐냐면 ubw루트 버전 스타워즈인 거시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이거 두개 다 아는 분들은 대충 상상 가능하실 걸로 사료됨(.....) 시간적 배경은 영화 에피소드 2. 나부에서 발발한 성배 전쟁과 파드메의 서번트로 소환된 유일무이한 vader 클래스 영령 다스 베이더.....의 이야기다. 베이더는 과거의 자신인 아나킨을 죽임으로써 그가 파드메와 사랑에 빠지고 저지를 수많은 비극들을 막으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자신의 고통스런 삶에 유일하게 빛나던 순간이었던 그 시절의 자신과 그 기억들을 저버릴 수 없음을 깨닫고 연인 앞에서 사라져간다. 사랑하는 나의 여왕님. 당신과 당신이 내게 주었던 마지막 선물-아이들-을 위해서. 마지막 장면만 써봤었는데 쓰면서 내가 완전 감동 먹었잖아(.....). 아니 내가 너무 잘써서-_-가 아니라 진짜 다스 베이더의 독백을 쓰고 있자니 완전 울고 싶어 미치겠어서. 이때 아나킨에 대한 내 빠심이 쫌....위험 수위...였지. 마지막에 사라져 가는 베이더를 보면서 파드메가 그의 정체를 직관적으로 짐작하고, 처음으로 베이더의 마스크를 벗기고 그 흉한 뺨을 쓰다듬는 장면을 뭔가 가슴이 막힌 거 같은 심정으로 쓰다가 비로소 '아, 난 이 조낸 이상한 글쪼가리를 써서라도 아나킨을 위로하고 싶었구나'라는 걸 알았다. 이런 글은 영원히 공개할 수 없어.
사랑합니다, 나의 여왕님. 영원히. 그가 미처 끝마치지 못한 말, 이미 오래 전에 전해졌던 말, 아마 지금도 머나먼 우주 어딘가를 떠돌며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있을. 젠장, 내가 부르다가 죽을 그 이름 아나킨.
5. 은혼 오키X히지. 이거 애절 백제 리스트에 올리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다 썼다;; 글만 비공개일 뿐. 시바 료타로의 타올라라 검을 읽다가 구상한 웬 사이코; 같은 팬픽으로, 살인광 새디스트 오키타와 정상인 히지카타의 이야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일 때 히지카타와 함께였던 오키타. 그 이후 오키타는 살인에의 쾌감을 언제나 히지카타, 즉 태연해 보여도 사실은 피치 못하게 사람을 검으로 상처 입히는 행위를 고통스럽게 행하는 것이 명백한 그 남자와 묶어서 기억하고 시시때때로 히지카타 앞에서 광기를 표출시켜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그를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것을 즐긴다. 어느 날, 두 사람의 동반순찰 중 또 오키타는 우연을 가장하여 천인을 벤다. 순찰에서 돌아가는 길에 피를 봐서 기분이 나쁘다며 단골 음식점으로 사라지는 히지카타를 뒤로 하고 타오르는 빨간 노을을 바라보며 오키타는, 히지카타를 죽이는 쾌감은 분명 엄청나겠지만 그가 없는 세계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따분한 짓은 도저히 견딜 수 없으므로 언젠가는 반드시 히지카타의 손에 죽고 싶다고 생각하며 쾌감에 몸을 떨며 미소짓는다.
아니 그러니까 왜 애절 백제냐면....이거 되게 애절하지 않나영? 최소한 난 그랬다. 어딘가 핀트가 어긋난 사이코의 애절. 설정이 너무 애증과 광기;에 치우친 게 좀 유치하기도 하고 그 뒤 미츠바 에피소드를 보면서 내 안의 오키타 캐릭터가 쫌 바뀌어서...앞으로도 공개로 돌릴 일은 없을 듯. 근데 유치한 글이 다 그렇지만 쓸때는 되게 재밌었음'-'
얼마 전 온다 리쿠의 모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데, 실제로 못 쓴 글이란 것도 진짜로 보여주지 않고 이렇게 짧게 요약해서 '이런 느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하고 늘어놓으면 뭔가 좀 더 재미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해봤다. 여담이지만 온다 리쿠의 그 책은 별로였다. 나야 글쟁이가 아니니까 이렇게 설정만 늘어놓으면서 놀아도 되지만 직업 글쟁이에겐 그런 나르시시즘은 좀, 뭐랄까, 더 내공을 쌓은 뒤에 펼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흠. 아무튼 위의 글들은 다 앞으로도 공개할 예정 없는 것들이니까 그냥 읽고 즐겨주세요.
아무튼...팬픽이 쓰고 싶네열.
앗싸 이 포스팅으로 태그 세 개 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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