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고 를르슈 감상을 쓰려고 했는데 벌써 2기 방영이 시작되어서-_-지금 뭐라도 적지 않으면 영영 적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챙겨본다는 게 다 그런 식이지만 이것도 방영할 때부터 보다 말다 보다 말다 하다가 올해 초 들어서 좀 달려 주셨더니 무사히 1기 시청완료. 재밌긴 하더라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 별로 칭찬할 작품은 아니니까 혹시 빠라면 읽지 말아주삼;;; 뭐 사실 난 까라고 할 정도로 관심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솔직히 이런 애니는 양파처럼 까야 제맛이지!?
[코드기어스 :반역의 를르슈](이하 코드기어스)의 세계관에 대해서는 짜증을 낸 적이 있지만, 이 놈의 세계관은 들여다 볼 수록 참 웃기다. 단순히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 국가의 리버스인 것만이 아니라, 좀 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일본 덕후들의 욕망-_-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주인공의 이름은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를르슈 랑페르쥬(Lelouch Ramperouge)다. 그렇다. 이거슨 클로드 를르슈를 떠올리게 하는 좋은 이름...이 아니라 이 이름은 뭔가 웃기다. '브리타니아'같이 초기에 영국 땅 자체를 지칭했다가 점차 영국의 국가적 신성을 의미하게 된 용어가 일본을 지배하는 나라의 이름인 동시에 주인공인 왕족의 이름이라는 점에 주목을 하면, 우리는 다시 '아 또 이놈의 영쿡에 대한 일본의 왜곡된 애정!? 영국에게라면 지배당해도 좋다 이거임? 아놔 이 영국보다 더 베컴을 좋아하는 영국 빠들아ㅋㅋㅋㅋㅋ' 하고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아서왕 신화에서 나온 '가웨인'이니 '란슬롯'이니 하는 메카의 작명도 그런 맥락에서 충분히 납득된다. 근데, '비'라는 듣보잡스런 귀족이름 성분은 그렇다치고 를르슈는 영국이 아닌 프랑스 이름이 아닌가. 랑페르쥬도 프랑스 성이고, 엄마 이름은 또 마리안느(혁명을 대표하는 여인으로 프랑스의 상징 중 하나)예요? 그리고 얼굴은 짤없는 일본 애다!? 누구냐, 넌!
를르슈/스자크는 표면적으로는 거대한 제국의 버려진 왕자/식민지의 신흥귀족이라는, 운명의 장난으로 출신 성분과 상반된 지위를 획득한 두 주인공...으로 보인다. 그런데 를르슈는 브리타니아 인임에도 일본인의 외모를, 스자크는 일본인임에도 서구형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인 주인공 체제인 척 하지만 사실 주인공은 를르슈이기 때문에 두 사람 관계의 이면에서는 언제나 를르슈가 정서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비천(!)하고 오만(단순함은 오만이다! 바보!)하며 죄인이자 공격자인 스자크에 대비되는 고귀하고 명석한, 피해자이자 수비자인 를르슈라는 묘한 구도가 작품 전체에 걸쳐 만들어지고 있다.
'를르슈'라는 캐릭터에는 영국적인 견고한 로열 패밀리에 대한 판타지에다 고전 순정만화기에 형성된 격동적, 혁명적인 프랑스의 인간 군상들에 대한 환상이 어우러지고(=결국 전반적인 서구 유럽문화에 대한 왜곡된 애정 맞음;;;;), 성계 시리즈나 사쿠라바 카즈키의 [고식]같은 모에계 라노베에서 볼 수 있는 서구적인 환타지 배경에 미소녀+근데 주인공 소년은 왠지 모르지만 일본인...(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밥맛없는 귀족집안;;;)이라는 등식까지 삽입되어 있는 것이다. 를르슈는 사실 일본인이라는 데에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으며 이건 애니에서 걔가 브리타니아 인으로 나오는 것과는 하등 상관 없는 결론이다.
그러나 를르슈는, 이고깽의 변형이랄 수 있는 일본 소년 주인공 제일주의에 완벽하게 편입되지 않는다. '평범한 소년들의 이입을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얼굴을 하고 일본인의 고귀한 피를 이어받은 이 소년은(=이 공식 하에서 카렌이나 오우기는 '일본인'이 아니다. 애초에 걔네는 일본인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찬란한 제국주의 국가의 일원인 동시에 그 제국의 잔인성의 피해자라는 형편 좋은 양면을 획득함으로써 작품의 취지야 어쨌든 간에 나 같은 조센징;의 눈에는 상당히 기만적인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물론 나는 를르슈의 이런 요소들이 의도적으로 삽입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무의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차라리 일부러 한 짓보다 좀 더 기분이 나쁘다면 나쁘달까 뭐 그것뿐^ㅁ^ 훗.
덧붙여 브리타니아(외 기타 듣보잡 식민지)/중화연맹/...등등의 거대 블록화된 세계관은 과거 건담 시리즈부터 은영전, 최근 히트친 건담 더블오에 이르기까지 매우 빈번하게 일본 오덕계에서 쓰이고 있는 간편한 세계 갈라먹기 스킬인데 도대체가 코에이에서 나온 삼국지도 아니고 이렇게 심플하게 나눠질 리가 없잖아...랄까 얘들 정치도 더럽게 못하는 거 같은데 어떻게 이런 규모의 연맹(혹은 제국)을 유지하고 있는거지!?!? 하는 의문이 뭉게뭉게 피어오르지만 귀찮으니까 넘어가고-_-
음. 그냥 내용 파트로 넘어갑시다.
이 애니의 성격은 너무 짬뽕스러워서 설명을 하자면 뿜기지만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은
왕자가 왕위를 되찾는다는 전통적인 Saga적 요소+학원물+메카물+변신물+소년, (이계)소녀를 만나다 물(;;;이게 뭐지...)
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인데...인기를 끌 것 같은 코드를 이것저것 삽입해보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이 중 뒤의 네 요소는 솔직히 모두 온전히 기능한다고 보기 어렵다. 학원물이라기에는 학원 생활과 학생회 친구들의 비중이 애매하기 그지없고, 메카물이라기에는 이렇게 다들 로봇 타고 싸우는데 별로 메카에 관심 안 가는 메카물도 흔치 않을 듯하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며, 변신물이라기엔 변신으로 야기되는 드라마틱한 갈등구조가 그다지 강렬하게 드러나지 않는 데다 변신의 묘미도 별로 없는 편이다(기아스는 뭐...엇따 쓰는건지 점점 의심스럽고;;). 소년소녀물...이라 함은 소년이 다른 세계의 소녀를 만나고 그 소녀의 세계로 편입됨으로써 모혐을 겪는, 뭐 그런 미야자키 하야오스런 플롯을 내멋대로 일컬음인데, 일단 를르슈는 씨투를 만났을 뿐 씨투의 세계에 개입하기보다는 도리어 그의 세계를 위해 씨투를 이용하는 데다 씨투는 그 큰 존재감에 비해 이야기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고 정체 역시 모호하게 남겨져 있다. 그렇다면 가장 주요한 특징은 맨 첫번째 요소, 즉 일본 판타지에서도 특히 역사가 긴 왕족+모험 중심의 사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그것도 미심쩍다. 일단, 가장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왕가 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해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건이 어째서 일어났는가에 대한 설명이 현저히 부족하다. 왕과 왕자들, 공주들, 왕비, 주인공에 이르기까지 상호간에 무수히 그어질 관계의 작대기가 그들의 관계를 충분히 드러내주지 못한다. 언뜻언뜻 비치는 집착, 혹은 증오가 떡밥으로서 이 '뭔가 더 있을 거 같아 보이는' 관계도를 커버할 뿐이다(이를테면 를르슈의 유페미아 첫사랑 발언. 이때의 내 기분은 뭐 어쩌라곸ㅋㅋㅋㅋㅋㅋㅋ님 장난?). 2기에서 다 설명해 줄 거라고? 아 네 그러시든지....-_- 근데 솔직히 1기에서 좀 보여 줘 놓고 낚아야 되는 거 아님?
그리고 가장 나를 지치게 한 것 중 하나는 얄팍한 세계관 못지 않은 부실한 캐릭터다. 이 애니를 보고 를르슈/스자크/유페미아라는 주인공 3인방의 성격에 대해 열심히 고찰해 보았으나 결론은 허무하게도 다음과 같았다.
를르슈-다중인격자(->마지막 화에 급 사이코로 '격상'되었음. 진작 그럴 것이지;;;)
스자크-정신병자(농담 아니고 치료가 시급함-_-)
유페미아-무개념
이거다....나도 이것 이외의 답을 찾고 싶었다....(눈물) 특히 를르슈와 스자크 두 사람의 묘사에 있어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것은 심각한 비일관성이다. 를르슈는 진작에 미친놈이, 사이코가 되었어야 했다. 그래야 캐릭터로서의 '성격'이 생긴다. 만화와 애니의 '캐릭터'는 간략화되고 코드화되고 극대화된 인간성이지 1초 단위로 수없이 갈등하고 고민하고 성격이 변화하는 인간 그 자체는 아니다. 무슨 애니로 의식의 흐름 소설을 쓰자는 것도 아니고 캐릭터는 맥락에 맞게 그 성격이 변화할지언정 지속적으로 특정한 개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를르슈는 수라의 길을 걷는 자의 비정함과 '보통 소년의 마음'이라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캐릭터 사이를 수시로 왔다갔다하며 나의 짜증을 유발하였다. 놀랍게도 23회 거의 마지막의 '각성' 이전에 를르슈는 캐릭터로서 계속 불완전한 채이다(이런 앨 데리고 2쿨동안 시청자를 농락하니?^ㅁ^). 스자크도 이상하기로는 절대 둘째 가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얜 더 이상하다. 위에서 설명한 '설명 부족'은 스자크에게도 적용된다. 스자크의 인생 따위 모르겠는데, 얘의 지금 생각 같은 거 더욱더 알 리가 없다. '어째서 아버지를 죽였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맥락은 없고 그 잔영인 트라우마만이 멋대로 수면 위로 떠올라 갈등이 형성되고 해소된다. 뭥미!? 여기에 해설이 있기나 한 건지 심히 의심스럽다. 훗. 고마 됐따=_= 치아라.
코드기어스는 재미있는 애니다. 부정하지 않겠다. 다크한 미소년 주인공, 쿨데레 히로인에 위에서 언급한 각종 코드들을 쏟아부어 꽤 그럴듯하게 번쩍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애니는, 공허하다. 진지함이 필요하다든가, 깊이나 작품성이 있어야 한다든가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제작진의 사려깊음의 문제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아닌 작품 자체에 대한 애정, 그것을 찾을 수 없다. 어떤 세계관으로, 어떤 인물들로 어떤 이야기를 말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 없다. 이야기 창조의 출발점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줄기의 속이 비어 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역시 노골적으로 모에 코드를 뒤섞어서 마음껏 폭파시켰지만 이 애니의 떡밥들은 작품 자체의 정체성을 표방하는 동시에 작품 내에서 충분히 활용됨으로써 이야기의 존재가치를 증명했다. 코드기어스는? 이 떡밥들은 다 뭐지? 굳이 이야기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었나? 심지어 다 따로 놀고 있는 이 심각한 부조화는 모다? 이 애니는 현재 누리고 있는 그 인기만큼이나 오래 남을 애니가 될 것인가? 글쎄, 일단은 아니라고 답하겠다. 그러나 '미친놈'이 된 를르슈가 뒤 안 돌아보고 일직선으로 달릴(부디 그러길 바람) 2기에는 아직 기대를 건다. 떡밥 정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니네 알지?
그리고 난 이런 무심함으로 이런 세계관을 만들어놨으면 최소한의 예의로 현실 세계와는 분리해주었으면 한다. 씨투 회상씬에서 자꾸 현실 세계 같은 영상이 나오니까 왠지....기분나빴다;;
졸리니까 여기까지 쓰고 걍 자겠음.
아 근데 애니 감상 쓰면서 캐릭터 모에를 빠뜨리면 아쉬우니까.
남자는 안경 3인조-로이드, 윌포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검은 기사단 멤버;; 누구지.
슈나이젤도 개중;엔 맘에 들고. 대놓고 왕자님인 남자는 싫지 않아서.
여자는 락시아타, 코넬리아, 미레이, 빌레타(당연히 각성 ver.)
이렇게 좋더라. 이놈의 안경모에에는 답이 ㅇ벗네.
아 참, 그래서 제목에 대한 답- 인스턴트 부대찌개는 자극적인 맛이 제법 낚임직하지만 몸에는 대략 조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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