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삼
출연
양조위: 주유
금성무: 제갈량
장첸: 손권
조미: 손상향
린즈링: 소교
조조: 장풍의
긴가민가하다가 손상향이 발랄하게 뛰어다니는 시점에 팍 든 생각. 응. 오우삼은 삼국지가 아니라 진삼국무쌍을 영화화했어야 했어.... 내 이미지 속의 적벽대전과 오우삼식 액션의 이 심각한 괴리라니; 나에게 적벽대전은 눈치작전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스펙터클이래 봐야 굴비 두름처럼 엮인 조조 선단이 불타는 부분 정도다. 사실 적벽대전은 사람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것 만큼 복잡한 전쟁이 아니다. 마음먹고 엑기스만 뽑아 만들면 영화 한 편에도 충분히 담을 수 있을 만한 분량이다. 그러나 오우삼은 이 전쟁 이야기를 거대한 동양의 반지의 제왕으로 만들고 싶어했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삼'이라는 애국적(?) 욕심이 어떻게 이야기 고유의 미덕을 깎아먹는지 잘 보여주었다.
적벽대전이 서양st. 전쟁과 다른 이유는 이게 헬름 협곡 전투 내지는 펠렌노르 평원 전투처럼 대부대 두개 던져놓고 자, 이제 우리 싸운다! 해서 붙어 싸우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제갈량-손권, 제갈량-주유, 제갈량+주유-조조 사이의 미묘한 감정 읽기로 점차 진전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무장들의 전투이기 이전에 모사들의 암투인 것이다. 오우삼은 이 암투의 대부분을 과감히 잘라버렸다. 초반의 조자룡과 관운장의 스펙터클한 액션이 지나간 뒤 유비가 쪽박 찬 절박한 상황에서 먼지 뒤집어쓰고 오로 건너온 제갈량은 별 설전 없이 눈빛(....)으로 손권을 설득한다. 한 술 더 떠 주유는 음악으로 설득한다. 그래, 오우삼은 남자 둘이 있으면 구구한 말 할 것 없이 총 아니면 눈빛 아니면 음악으로 마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이 고매한 간지를 미천한 아녀자가 어찌 이해하리오;ㅁ;
연환계 클라이막스는 2부로 넘기기 위해서 원전에는 없는 육지전-그것도 가장 퐌타지스러운 구궁팔괘진을 넣었는데 이건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다. 단지 전투와 전투 사이의 개연성이 부족하고 막상 전투 장면에 와서도 대규모 전쟁씬이라기보다는 스파르탄 300명이 장렬하게 싸우는 느낌이 든다는 게 좀 그래.... 전투씬 촬영도 삼백같이 했더만 전체적인 색감까지 노르스름한 게 더 그렇다. 영화 제목이 적벽이라 그랬다고 하면 뭐 할 말은 없고; 삼백이라기보단 그냥 삼일지도 모르겠다. 싸움은 관우, 장비, 조운이 다 하니까. 근데 이래가지고 분위기상 다음 편에 무사히 고육계가 들어갈지가 좀 의문이..이 사람들 너무 정정당당히 싸워효;
이러니 저러니 하긴 해도 오우삼의 판타지가 작열하는 순간만큼은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미덕이 생겨난다. 문자 그대로 일당백인 촉의 장수들을 보면서 즐거워할 사람은 꽤 많을 것이다. 제갈량과 주유의
적은 출연 분량에도 불구하고 가장 이득을 본 인물은 손권이다. 대체로 유비-조조의 대립 구도 사이에 끼어 소외되는 일이 많은 인물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해석의 자유도가 높은 인물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자주 잊는 것 중 하나는 적벽대전이 주유, 제갈량, 유비의 전투이기 이전에 손권의 전투라는 사실이다. 손권은 자수성가한 유비와 조조와는 달리 '계승한 군주'이며 강동의 호랑이를 아비로, 소패왕을 형으로 둔 인물이다. 워낙 앞 사람들이 짧고 굵게 산 덕에 둘째로서의 컴플렉스가 없었을 리 없으며 주유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재들은 자신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 혹은 형을 따라 온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통솔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임이 틀림없다. 장첸의 손권은 젊고 경험 없는 군주이다. 그는 난 인물이고 야망을 품고 있지만 아버지와 형과 가신들의 보이지 않는 압박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한다. 이미 쌓여진 것에 대한 두려움. 실패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적벽대전은 이 젊은 군주가 처음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하는 전투이다. 호랑이 사냥은 노골적인 통과의례로, 그 전후에 배치된 손권이 홀로 보검을 바라보는 장면, 전쟁을 결심한 후 문무백관 앞에서 책상 모서리를 가르는 장면과 함께 손권이 이 영화에서 그 누구보다도 주인공스럽게 보이는 데에 기여한다. 왜, 삼백도 짐승 때려잡는 데부터 시작하지 않나(낄낄). 어린 왕자님은 어른이 되고...그러면서 전형적인 왕국 판타지가 펼쳐지는 거지.
사실 손권은 원래 그렇게 미남이라는 인상은 없지만 장첸의 그 얄쌍한 미모의 손권은 날카로운 눈 깊은 곳에 야심을 품은 설익은 군주의 모습을 너무 훌륭하게 구현해서 당분간 삼국지 땔감으로 난 장첸을 쓰기로 하겠다. 첫 등장 장면도 어찌나 뮤직비디오인지 제갈량이랑 눈을 마주치는데 시방 이것이 허니클의 다케모토가 말하던 사람이 한눈에 반하는 순간인가!?!?싶더란.....별 말 안 해도 나는 당신 속을 잘 알아요. 하는 느낌으로 둘이 마주보다가 어깨에 손을 턱 얹는데 아 나 또 이 인터뷰가 생각이 나서 '뭐니, 너네. 또 서로의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서 말을 잇지 못하겠니'하고 속으로 허리가 꺾어지도록 웃었던 것이었다....미안행.
새신랑 양조위의 주유와 금성무의 제갈량에 대해서는 도리어 별로 할 말이 없는데 얘넨 정말 반지원정대의 아라곤-레골라스만큼 사이가 좋아서 나중에 새삼스럽게 '우리가 적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운할 때 아니 그 생각을 이제 했냐....그리고 니네는 적 안 될 거 같아....이러고 궁시렁궁시렁. 너무 둘이 좋아해서 별로 그 쪽으로 불타오르질 못하겠더라.
오히려 좀 무네큥;한 건 손권이랑 손상향이던데. 좀 칙칙;한 미남오빠랑 발랄한 여동생의 투닥투닥거리는 밸런스가 너무 좋고 손권이 유비한테 시집보내려고 운 띄워서 손상향이 짜게 식어 나간 뒤 쟤 왜 저러냐고 의아해하는 손권 꼬라지를 보고 있으니 뭐임마 오빠가 좋아서 시집가기 싫어 그런 거잖아!!!!하는 나는 좀 많이 위험하다!? 장첸이 오빠면 나도 시집 안 갈래^ㅁ^ 손상향과 제갈량의 미묘한 공기에 대해서는 무서워서 생각하고 싶지 않음....사랑과 전쟁은 위나라로 족합니다;;;
그 외에 유비와 조조의 캐스팅은 맘에 들었는데 관우와 장비는 너무 스테레오타입이라 좀 재미가 없었다. 하긴 중국사에선 이미 신급;이 된 인물들이라 새삼 변화를 주기도 뭣했겠지만 그래도 좀 막동이같은 맛이 있는 장비랑 수염미중년(혹은 미청년) 관우같은 걸 보고 싶어연...내가 뭐 요코하마 마쓰테루 버전 유관장 삼형제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좀 대춧빛얼굴 누에눈썹 봉황눈매 설정에 약간만 집착 덜 해달라는 것뿐인데;ㅁ; 뭘 숨기랴, 내 삼국지 덕질은 관운장으로부터 시작되었슈. 아무튼 짚신 삼는 유비가 그림처럼 잘 어울려서 참 좋았고 예쁜 옆나라 도독님이 일부러 만나러 왔는데 그 옆에서 울횽표 짚신이 최고야!!하는 장비도 귀엽고 역시 촉은 이렇게 화목하게 웍더글 덕더글하는 분위기가 매력이지!? 동네횽같은 조자룡도 좋더라. 다들 조자룡이 미청년이 아니라고 실망하던데 오히려 내 조자룡 이미지는 좀 저런 거라. 코에이가 사람들 눈높이를 너무 높여 놨엉...심심할때는 삼국지 실사판을 땡기자.
덧>유비가 아두를 어떻게 던질까 두근두근했는데 안 던지더라....이런거 기대해서 죄송.
덧2>초반에 관우조조대치씬에 오관육참 떡밥 좀 흘려 줘야 하지 않겠삼? 아니 내가 관우+조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거짓말☆) 나중에 화용도에서 마주쳤을 때 좀 뜬금없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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