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줄 아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요지의 책이 인기리에 팔릴 무렵에도 나는 외골수로 각종 잡동사니의 탑을 방에 쌓고 있었다. 버릴 줄 모르면 치울 줄이나 알아야지 이건 뭐, 답 내는 걸 포기한 지 오래다. 어제는 모처럼 마음을 잡고 내 인생의 이 족쇄를 좀 가볍게 해 볼 요량으로 책을 몇 개 박스에 쌌다. 알라딘 중고샵에 팔 수 있는 책들을 골라 내어서 견적을 내 보니 그럭저럭 용돈 벌이는 되겠더라.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은 본래 빈궁한 법인데 이야기를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다니 반갑고도 미안한 일이다. 나는 천성이 물건을 못 버리는 여자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엄마의 방 좀 치우라는 성화에 못 이겨 책상 서랍을 뒤지면서 소풍날 잡상인에게 산 천 원짜리 건전지 닳은 얄궂은 열쇠고리를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고뇌하던 촏잉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인형처럼 사람 형상이나 동물 형상을 한 것은 절대 버리질 못해 엄마가 내가 없을 때 몰래 싸서 버리곤 했다. 세라 크루의 영향이었던가, 토이 스토리의 영향이었던가. 아무튼 표정이 있는 물건은 안타까워서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때때로 그 물건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영영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음악 한 곡을 들어도 그 음악을 들었던 당시의 기분, 읽고 있었던 책, 함께 있었던 사람이 아련하게 떠오르는데 하물며 실체가 있는 물건임에야. 정말로 재미도 없고 형편없는 책 한 권에도 기억이 얽혀 있어 마음 먹고 쳐내기가 쉽지 않다. 그 때 이 책을 샀었지. 그 사람이 이 책을 사 줬었지. 그래, 그런 느낌이었어. 별 영양가도 없는 기억과 감정인데도 이 책만의 고유한 것, 그러니 이를 버림으로써 다시 보지 못하고 그래서 다시 떠올리지 못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왠지 모르게 아깝고 내 뇌의 일부처럼 느껴져 죽을 때까지 껴안고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그래서 내 꿈은 언제나 집 지하에 거대한 서고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지상에 만들면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할 테니까). 그러나 낡은 기억들은 때로는 포맷해 줘야 하는 법이다. 까놓고 사실을 말하자면 며칠 전 책장이 책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져서 A/S를 받았다. 일본 어느 오타쿠가 사는 방에 책이 너무 많아 어느 날 바닥이 무너져서 그 아래에 자고 있던 노모가 죽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가. 죽어도 남한테 폐 안 끼치고 곱게 죽어야지 내 아랫집 사는 사람에게 차마 그런 재난을 당하게 하고도 성불할 깡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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